전적지 안내지도

[1] 평화의 탑 [2] 충혼비 [3] 철쭉탑 [4] 집단 자결 위령비 [5] 투루가마 방공호 [6] 다카쓰키야마 주변 [7] 평화의 불 채화 기념비 [8] 시지야마 [9] 아카섬 첫 상륙지 [10] 마루레 은닉호 옛터 [11] 이에촌민 수용지 옛터 기념비 [12] 비둘기탑 [13] 세계 평화 기념비

자연이 풍부한 아름다운 마을에 남겨져 있는 수많은 전쟁의 흔적들. 잊어서는 안 될 “평화의 소중함” 을 가슴 깊이 새기고 지켜내어 미래에 전한다.

자마미촌은 1945년 3월 26일부터 시작된 오키나와 전투에서 미군이 처음 상륙한 곳으로 수많은 생명이 희생된 곳입니다. 이곳에는 전쟁 당시 주민들이 피난처로 삼았던 방공호 및 희생자의 혼을 위로하기 위한 위령비 등 오키나와 전투의 기억을 전하는 수많은 흔적들이 현존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것들을 보존하고 전달함으로써 보다 많은 분들이 평화에 대해 알게 되고 또한 느끼고 생각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자마미촌의 마음을 담았습니다.

게라마제도 미군 침공에 대하여

당시 미군의 오키나와 본섬 침공을 예상했던 일본군은 미군을 배후에서 기습하기 위해 게라마의 섬 곳곳에 약 200정의 마루레(해상 특공정)를 배치하였습니다. 그러나 이와는 달리 미군은 본섬 상륙에 앞서 보급기지로 게라마제도부터 제압하기 시작합니다. 1945년 3월 23일 수백 함대에 의한 포폭격 후에 상륙한 미군은 압도적인 전투력으로 불과 며칠만에 섬들을 점거하였습니다. 게라마제도 주변에는 악천후시에도 함정이 비바람을 피할 수 있는 천연 정박지가 44곳이나 있어 수상기 기지 배치에도 적합하여 군사적 가치가 높았다고 합니다.

게라마제도 침공

1945년 3월 23일
자마미・아카 국민학교 및 민가 대부분이 폭탄 투하로 인해 소실됨
3월 25일
각 섬에 공습 함포 사격
3월 26일
아카섬, 게루마섬, 자마미섬에 상륙. 일본군과 육상 전투 개시
3월 27일
도카시키섬 상륙

“전적지” 를 둘러볼 때의 주의 사항

  • 단독행동은 피하시고 반드시 동반자와 함께 행동하시기 바랍니다. 위령비 안쪽이나 산속으로 들어가서는 안 됩니다. 대단히 위험합니다.
  • 건강 상태와 부상 방지에 유의하는 등 각자의 책임하에 행동해 주시기 바랍니다.
  • 전적지를 둘러보다가 생긴 사고나 부상 등에 대하여 자마미촌은 일체의 책임을 지지 않으니 양해를 부탁드립니다.
  • 전적지는 마을과 주민들에게 의미깊고 소중한 곳입니다.
[1] 평화의 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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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의 탑
견학 가능

자마미 마을의 학교 뒷편에 있는 위령탑. 항구에서 도보로 약 10분. 1945년 3월 미군에 의한 오키나와 상륙 작전의 도화선이 된 게라마 전투의 희생자 (집단 자결 포함) 군인과 민간인 1,200여명을 평화의 수호신으로 모시고 있습니다. 자마미촌 주민이 624명, 일본 군인이 376명으로 매년 3월 26일에는 위령제를 지내고 있습니다.

[2] 충혼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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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혼비
견학 가능

1941년 (昭和16년) 에 건립. 오키나와현에서 가장 마지막에 세워진 충혼비. 정면의 계단에는 탄흔이 남아 있습니다.

[3] 철쭉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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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쭉탑
견학 가능

국민학교의 교장과 직원이 피난했던 방공호 옛터에 건립. 저수댐 건설로 방공호는 남아 있지 않습니다. 미군이 상륙한 3월 26일, 수류탄에 의한 집단 자결이 있었다고 하는 장소입니다.

[4] 집단 자결 위령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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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단 자결 위령비
견학 가능

자마미촌의 촌장, 부촌장을 비롯한 직원과 가족 등 59명이 산업조합 방공호 안에서 집단 자결했다는 곳입니다. 생존자가 없어 집단 자결에 이른 경위는 명확하지 않습니다.

[5] 투루가마 방공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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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루가마 방공호

당시에는 더 깊었지만 현재는 모래가 들어가 공간이 넓지 않습니다. 이곳에서의 희생자는 없다고 합니다.

[6] 다카쓰키야마 주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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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카쓰키야마 주변
견학 가능

자마미촌 마을 뒷편에 있는 해발 131미터의 고지대. 게라마 전투에서는 미군의 상륙 후에 톤마와 같이 고사포 진지로 구축되었습니다.

[7] 평화의 불 채화 기념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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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의 불 채화 기념비
견학 가능

이토만시 평화 기념 공원에 있는 항구적인 평화를 기원하는 상징 “평화의 불”은 오키나와 전투의 첫 상륙지인 자마미촌의 아카섬에서 채취한 불로 피폭지 히로시마시의 “평화의 등불”과 나가사키시의 “맹세의 불”을 합친 것입니다. 1991년 6월 20일 오키나와현 전몰자 위령 추도식 거행 당시 채화를 거행하였습니다. 아카섬은 제2차 세계대전 말기의 오키나와 전투에서 미군이 처음 상륙한 곳으로 오키나와 전쟁의 상징이기도 합니다. 이에 아카섬이 “평화의 불” 채화지로 선정되었으며 이를 기념하기 위해 채화 기념비가 설치되었습니다.

[8] 시지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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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지야마(스기야마)
견학 가능

적함의 내습에 대비해 주민의 상당수가 피난처로 삼은 곳. 아카 주민의 시지야마 생활은 5개월간 계속되었습니다.

[9] 아카섬 첫 상륙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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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섬 첫 상륙지
견학 가능

3월 26일 8시 4분, 미국이 처음 상륙한 곳입니다.

[10] 마루레 은닉호 옛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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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루레 은닉호 옛터
견학 가능

특공정 “마루레”를 숨겨 놓았던 은닉호. 마루레는 미군함정의 특공 공격을 위한 비밀 병기로 섬 내의 여러 은닉호에 격납되어 있었습니다. 합판으로 만들어진 특공정은 통칭 “마루레”로 불리며 폭 1.8m, 길이 5.6m, 중량 1,200kg의 반활주형 보트로 120kg의 수중 폭탄 2개가 탑재되어 있었습니다.

[11] 이에촌민 수용지 옛터 기념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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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촌민 수용지 옛터 기념비
견학 가능

이에섬을 점령한 미군은 이에섬 주민을 포로로 강제 수용하여 자마미의 여러 섬으로 이송했습니다. 이 비석은 전후 50주년을 맞아 이에섬 주민들의 수용소였던 옛터에 건립한 기념비입니다.

[12] 비둘기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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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둘기탑
견학 가능

오키나와 전투에서 희생된 어린 아이들을 추모하고 있는 이 탑은 게라마의 바다가 내다보이는 전망 좋은 곳에 세워져 있습니다. 이 아기 비둘기탑이 바라보고 있는 곳에 자마미촌 게루마 초중학교가 있습니다.

[13] 세계 평화 기념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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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평화 기념비
견학 가능

1999년 (昭和11년) 에 세계 평화를 기원하기 위해 건립되었습니다.